안압지(임해전 터)는 통일 신라 시대의 별궁의 터의 일부이다. 통일 신라의 별궁에는 임해전을 비롯한 건물들과 정원, 못이 있었다고 한다. 못은 원래 월지(달 못)이라고 불렸으나, 조선 시대에 이르러 폐허가 되었고, 기러기와 오리들이 날아들어 안압지라고 불리게 되었다. 1975년 발굴조사에 따라 그 모습이 확인되었다. 안압지는 신라 시대의 정원의 모습을 알 수 있는 대표적인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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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료] 1,000원
[여는 시간] 09:00~22:30
[닫는 날] 없음
[가는 방법]
첨성대, 월성에서 걸어 간다.
11번 버스. 600번~609번 버스(606번 제외): 국립 경주 박물관 버스 정류장에 내린다.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탄다.
[크게 보기]
안압지 정문과 매표소.
입장료 1,000원. 밤 10시 30분까지.
안압지 내부. 오른쪽 건물이 제1건물, 가운데 건물이 제3건물, 왼쪽 건물이 제5건물이다.
임해전 터에는 회랑을 포함, 모두 26개소의 건물터가 확인되었다고 한다. 1980년 못 서쪽의 다섯 개의 건물 터 중 3동의 건물을 복원하였다. 하지만 어느 건물이 정확히 임해전인지는 모른다. 현재에도 임해전 터 북쪽을 발굴하고 있는데 대규모 건물터들이 계속 발굴되고 있다.
제1건물에 월정교의 복원 모형을 전시해 두었다.
월정교 모형. 월정교는 경주 남천의 다리로서 월성 남서쪽에 있었다. 길이 60m정도 이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경덕왕 19년(760년)에 월정교와 춘양교(일정교)를 놓았다고 한다. 고려 충렬왕 6년에 다시 고쳤다는 기록도 있다. 1987년 발굴조사 때 교각 사이에서 불에 탄 나무들과 기와조각이 발견되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다리 위에 누각이 있는 누각다리라고 추정되고 있다. 현재 복원 공사 중이다. 하지만 월정교에 대해 아무런 자료가 없으므로 복원이 아니라 상상력에 기반하여 새로 짓는 것이다.
월정교는 원효스님과 요석공주의 사랑의 전설이 서린 다리이다. 하지만 월정교는 경덕왕 때 지었고, 원효스님은 그 전인 무열왕 때 스님이므로, 전설은 전설일 뿐이다. 아니면 그 전에도 월정교 자리에 다리가 있었을 수도 있다.
제1건물에서 본 안압지의 잉어들.
제3건물. 이름이 멋없긴 하지만 이름은 밝혀져 있지 않아서 어쩔 수 없다.
제3건물에는 임해전 터의 모형이 전시되어 있다.
제5건물 쪽에서 본 제3건물과 제1건물.
안압지.
입수로. 안압지로 물이 들어오던 물길이다.
안압지에서 나와서 국립 경주 박물관쪽으로 보면 연못이 있다. 연꽃밭이다.
문화재 안에서 동네 유원지 수준의 노래자랑 대회가 열리고 있다. 스피커 볼륨을 한껏 높여 조금 떨어져 있는 박물관 안까지 노래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리고 있었다.
첨성대에서 가는 길
첨성대에서 나와 똑바로 계속 간다.
안압지 가는 길. 첨성대 앞에서 계속 가면 된다. 월성으로 가서 석빙고를 본 후 안압지로 가도 된다.
길 양쪽에 꽃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월성 쪽에는 유채밭이다.
길 끝에 보이는 도로 건너편이 안압지이다. 입구는 좀 더 오른쪽으로 가야 한다.
월성에서 가는 길
월성에서 석빙고를 지나 조금만 더 가면 월성 동쪽 출입구가 나온다. [월성] 페이지 참조. 도로 건너편에 보이는 숲이 안압지이다. 도로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안압지 입구가 나온다.
첨성대에서 안압지로 가는 길과 월성 동쪽 출입구에서 나오는 길은 서로 만난다. 사진 오른쪽 화살표가 있는 길이 첨성대에서 나오는 길이다. 이 횡단보도에서 보면....
왼쪽에 안압지 표파는 곳이 보인다. 계속 가면 다음 신호등이 있는 네거리가 박물관 네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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