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아 코는 앙코르에서 어느 왕이, 어떤 목적으로 사원을 건립하였는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이 남아 있는 유적지들 중에서 최초로 지어진 사원이다. 프레아 코는 현재 복원이 많이 진행되어 중앙 성소의 건축 양식과 조각 양식을 비교적 잘 볼 수 있다. 초기 사원이라서 사용하기 편리한 벽돌로 탑을 쌓았지만, 사암, 라테라이트, 스투코도 활용해서 사원을 꾸몄다.
앙코르의 세 번째 왕인 인드라바르만 1세가 자신의 왕위 정통성 확보를 위해 조상의 묘를 통한 신격화와 시바 신을 위해 880년 정도에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새로운 수도인 하리하랄라야에 최초로 지은 사원으로서 그 의미가 높다.
첸라 왕조의 왕자였던 자야 바르만 2세(첫 번째 왕)가 프놈 쿨렌 산에서 데바 라자 의식을 하고, 앙코르 왕조를 연다. 몇 차례 수도를 옮기다 마지막으로 정착한 곳이 이 곳 하리하랄라야(시바와 비뉴수에게 바치는 도시라는 뜻) 지역이다. 이후 그의 아들 자야 바르만 3세(두 번째 왕)가 왕이 되었으나, 끊임없는 적국의 침입으로 후계자 없이 죽고 만다.
왕의 자리가 공석인 틈을 타서 인드라바르만 1세의 외할아버지가 권력을 장악하게 되고, 그 당시 외국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외손자 인드라바르만 1세(세 번째 왕)에게 왕의 자리를 주게된다. 인드라바르만 1세의 즉위에는 외측 세력의 도움이 많았다. 학자에 따라서는 인드라바르만 1세의 권력 쿠테라라고 보기도 한다. 비문에는 인드라바르만 1세가 자야 바르만 2세의 혼인으로 이루어진 후계자라고 하고 있다. 그래서 자야 바르만 2세의 피가 섞이지 않은 아들로 어머니의 정략 결혼으로 양자가 된 것 같다는 의견도 있다.
인드라바르만 1세의 아들 야소 바르만 1세(네 번째 왕)가 프놈 바켕 지역으로 수도를 이전하면서 롤루오스(하리하랄라야)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된다.
프레아 코에서 프레아는 크메르 어로 신성하다는 뜻이고, 코는 소라는 뜻이다. 즉 신성한 소라는 뜻으로, 중앙 성소 앞에 소 세 마리가 엎드려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신성한 소는 시바가 타고 다닌 난디를 말하므로, 시바 신을 위한 사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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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료] 앙코르 공통권 : 37US$(1일권) / 62US$(3일권), 72US$(7일권). 유적지마다 입장권을 검사한다
[관람 시간] 새벽~저녁 / 매표소 운영시간 05:00~17:30
[닫는 날] 없음
프레아 코 동쪽 입구이다. 멀리 중앙 성소가 바로 보인다. 프레아 코는 400mx 500m나 되는 큰 사원이었지만(구글 지도로 보면 흔적이 보인다) 현재는 많은 부분이 유실되어 중앙 성소 부근만 복원되어 있다. 유적 관람 포인트도 중앙 성소에 한정된다.
프레아 코 출입문의 밸러스터(Baluster, 돌창살)이다. 앙코르 초기의 밸러스터는 원통 모양의 돌창살만으로 되어 있어 실제 창문처럼 바깥을 볼 수 있는 구조이다. 앙코르의 밸러스터는 크메르 창문 건축의 특징으로 시대에 따라 조금씩 변해간다. 앙코르 유적지에서 밸러스터 모양을 확인하는 것도 재미있지만, 주로 창문과 창문틀, 밸러스터를 이용해서 셀카 사진도 많이 찍는다.
라테라이트(laterit)는 열대 지방에 분포하는 적갈색의 흙이다. 라테라이트는 열대 우림의 고온 다습한 환경때문에 습기가 있을때는 부드럽지만, 건조한 환경에 노출되면 토양의 유기물이 제거되면서 매우 단단해진다. 화학 반응으로 철분이 산화되면서 붉은 색을 띤다. 앙코르 유적에서는 라테라이트 벽돌을 사용하여 담벼락을 만들기도 하였다. 앙코르 유적이 오랫동안 비바람에 견딜 수 있었던 것은 건물 내부에 라테라이트로 전체적 형태를 잡은 다음, 겉 부분만 사암으로 아름답게 장식하였기 때문이다.
프레아 코의 밸러스터(Baluster)는 보존 상태가 양호한 것이 별로 없다. 대부분 사진처럼 밸러스터가 무너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창틀을 보면 홈이 파진 것이 보이고, 밸러스터 하단에는 홈에 들어갈 수 있도록 튀어 나온 부분이 보인다.
프레아 코 입구에서 중앙 성소로 가는 참배로를 보면 문기둥만 홀로 남아 있다. 사진에 나무와 사람이 앉아 있는 곳에서 입장권 검사를 한다.
프레아 코 참배로는 라테라이트로 되어 있고, 양쪽으로 링가가 세워져 있다. 알 수 없는 이유이지만 밸러스터도 세워져 있다.
링가는 새로운 창조를 위한 파괴의 신인 시바 신의 성상이다. 시바 사원에 시바 신 대신 링가를 모시는 경우가 있다. 원초적 생명의 표현으로 남근을 상징화하였다. 주로 끝을 원통형으로 만든다. 여성의 성기를 상징한 네모난 요니와 대칭된다. 보통 요니 위에 링가를 중앙에 올려 놓는다.
시바 신을 모시는 사원에 링가와 요니가 있게 된 전설이 재미있다. 옛날 옛적에 수행자들이 세상에 산적한 고민들을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있을 때, 시바 신이 지나가다가 이를 보고는 장난삼아 젊은 남자로 변신하고는 수행자들의 부인들을 유혹해서는 같이 춤추고 밤새 놀았다고 한다. 그 모습을 수행자들이 보고는 화가 나서 그 젊은 남자에게 성기가 잘리는 주문을 걸었으나, 시바 신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오히려 시바 신의 화만 부추겨서 시바 신은 스스로 성기를 자르고는 사라진다. 이후 세상의 모든 생물들의 생식이 중단되어 버린다. 수행자들이 삭티를 찾아가 이 문제를 의논하자, 삭티는 이 일이 시바 신이 자신의 성기를 자른 것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는 삭티 본인이 직접 여자의 성기 모양으로 변신해서 시바 신을 유혹하게 된다. 시바 신이 유혹에 넘어가 다시 자신의 성기를 붙이자, 모든 생물들의 생식도 다시 시작되었다. 수행자들은 시바 신이 젊은 남자로 변신한 것을 알아채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는 앞으로는 시바 신의 사원임을 알 수 있도록 사원 안에 생식의 상징인 링가와 요니를 모시기로 결정하였다고 한다.
프레아 코 경내도이다. 프레아 코는 중앙 성소만 복원된 상태라서 경내도의 의미가 작지만, 화장터, 도서관 등 앙코르 초기 유적의 건축물의 구성을 알 수 있도록 간략하게 그렸다.
프레아 코는 세 겹의 담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중앙 성소에서는 외벽과 내벽을 볼 수 있다. 고푸라(탑으로 된 문)도 동쪽과 서쪽에만 있다.
프레아 코는 시바 신을 위한 사원이지만, 인드라바르만 1세(877~886년)가 왕위에 올라 자신의 부모와 조상을 모신 사원(880년 축성된 것으로 추정)이기도 하다. 인드라바르만1세 자신을 위한 사원으로는 881년에 바콩 사원을 만든다.
중앙 성소의 탑들은 1. 인드라바르만 1세의 아버지, 2. 선대왕인 자야 바르만 2세, 3. 인드라바르만 1세의 외할아버지, 4. 인드라바르만 1세의 어머니, 5. 자야 바르만 2세 왕비, 6. 인드라바르만 1세의 외할머니를 위한 탑이다. 각 탑안에 실제로 시체를 안치하였는지 현재 확인이 안되며, 조상을 기리는 공묘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앞쪽(1,2,3)은 남자 조상을 모셨고, 뒤쪽(4,5,6)은 앞쪽의 남자들의 각 부인으로서 여자 조상을 모셨다. 6개의 탑들이 모두 크기가 조금씩 다르고, 탑 사이의 간격이 비정형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인드라바르만 1세는 앙코르 왕조를 연 자야 바르만 2세의 아들이나, 피는 섞이지 않았다. 어머니의 정략 결혼으로 양자가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왕권의 정통성이 약해서 자신의 조상을 신격화하였다는 설이 있다.
프레아 코 표 검사를 마치면 바로 외벽 동쪽 고푸라 앞이다. 고푸라로 들어가는 문 앞에는 월장석(Moonstone, 문스톤)이 놓여 있다. 중앙 성소 올라가는 계단 앞에도 월장석이 있고, 각 탑의 문 앞에도 월장석이 있다.
프레아 코 외벽 동쪽 고푸라이다. 외벽 고푸라는 훼손이 심해 라테라이트로 만든 건물 모양만 짐작할 뿐, 현재는 고푸라의 모습을 볼 수는 없다.
프레아 코의 내벽 동쪽 고푸라이다. 예전에 있었을 내벽은 모두 허물어지고 없다.
프레아 코의 북쪽 도서관이다.
앙코르 건축에서의 도서관이란 책을 직접 보관한 곳이라기 보다는 부조로서 힌두 신화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건물 자체가 도서관 역할을 하였다고 보고 있다. 보통 중앙 성소 앞에 남북으로 한쌍씩 있다. 학자에 따라서는 신전에 제사를 드리기 위해 잠시 거처하거나 제사 도구들을 보관하던 곳으로 생각하는 견해도 있다.
프레아 코의 북쪽 도서관 입구이다.
프레아 코의 남쪽 도서관과 화장터이다. 조상을 모시는 사원이고, 환기 구멍이 있어서 화장터로 추정되는 건물이다.
프레아 코의 중앙 성소이다. 중앙 성소의 기단은 이후에 만들어지는 앙코르 유적과 다르게 매우 낮은 편이다. 프레아 코가 화장터와 무덤의 역할도 하였으므로, 지하 세계와 좀 더 가깝도록 하기 위해서 중앙 성소의 기단을 낮게 만들었다는 견해도 있다.
각각의 탑 앞에는 난디가 탑을 바라보면서 있고, 계단도 각 탑 앞으로 하나씩 있다. 그래서 중앙 성소 앞쪽 계단은 모두 3개인 반면, 뒤쪽으로 가면 계단은 하나만 있다. 각 계단 위 기단에는 사자상이 한쌍씩 총 여섯마리가 있다.
중앙 성소 앞쪽의 각 탑의 주인은 1. 인드라바르만 1세의 아버지, 2. 선대왕인 자야 바르만 2세, 3. 인드라바르만 1세의 외할아버지이다. 모두 남자들이다. 그래서 탑의 문 양쪽을 지키고 있는 있는 수호신도 남신상이다. 뒤쪽의 3개의 탑은 여자들을 모신 탑으로 여신상이 새겨져 있다.
프레아 코의 난디(Nandi)이다. 프레아 코라는 이름이 유래된 소이다. 시바 신이 타고 다니는 흰색 소인 난디를 형상화하였다. 난디는 시바 신전 앞에 보통 앞다리를 바짝 엎드려 있다.
난디는 힌두 교인들이 숭상하는 흰색 황소이다. 시바 신과 인드라 신이 서로 싸울 때 난디가 시바 신을 대신해서 승리한 뒤로 시바 신이 타고 다니는 영물이 되었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에게 소는 매우 귀중한 가축이고, 생식과 종족 번영의 상징으로 힌두교에서는 난디(소)를 숭배하고 있다.
프레아 코의 중앙 성소의 사자상이다. 사암으로 만들었다. 앙코르의 초기 조각으로 사자상이 다소 통통하고, 엉덩이를 바닥에서 살짝 들어 올린 채 서 있으며, 갈퀴도 풍성한 것이 숫사자같다. 후대로 갈수록 사자상이 날렵해지고, 엉덩이쪽을 더 높이 드는 자세를 취한다.
프레아 코의 중앙 성소에서 출입구쪽을 바라본 모습이다. 난디와 사자상이 있다.
프레아 코의 중앙 성소를 옆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모두 6개의 탑이 있다. 앞쪽은 남자 조상들이고, 뒤쪽은 여자 조상들이다. 앞쪽 남자 조상들의 탑들이 조금 더 크고 높다.
중앙 성소의 탑들 자체는 벽돌로 쌓아 올렸다(전탑). 문 틀이랑 린텔, 남신상 등 사원에서 가장 주요한 부분은 사암으로 부조하였다. 그리고 벽돌 위에 석회를 두텁게 발라서 그 위에 부조를 새긴 것(스투코, Stucco)를 볼 수 있다.
벽돌은 앙코르 건축의 재료들 중에서 비교적 다루기가 쉬운 편이다. 그래서 초기 유적지에서 많이 사용하였다. 벽돌 위의 스투코 또한 편리한 부조 방식이었으나 현재는 많이 훼손되어 제대로 된 부조를 보기가 어렵다. 사암은 앙코르 유적 건축 재료 중에서 돌로 다룬 것으로, 다루기도 어렵고 여러 사람의 협업이 필요한 재료였지만, 돌이란 특성상 많이 보존되어 있는 편이다. 초기 사원에서부터 린텔같은 주요 부분에는 사암을 사용하기 시작하여, 점차 확대해오다 따 께오에서는 사원 전체에 사암을 사용하였다. 이때부터 사암이 앙코르의 대표적 건축 재료가 된다.
중앙 성소에서 볼만한 것으로 남신상과 여신상도 있다. 중앙 성소 6개의 탑 중 앞쪽(동쪽)의 3개의 탑에는 남신상이 부조되어 있다. 탑의 문 양 옆으로 남신상이 있는데, 사진의 왼쪽 남신상처럼 부조 상태가 대부분 좋지 못하다. 여신상의 상태는 더욱 나쁘다. 사암을 재료로 사용하였고, 남신상은 오른손에 삼지창을 들고 있다. 남신상을 둘러싸고 있는 건축물의 문 기둥을 보면 마카라가 새겨져 있다. 마카라는 악어 입과 코끼리의 코를 가진 상상의 동물이다. 후대로 오면 이곳에는 마카라 대신 주로 나가를 많이 새겨 넣는다.
마카라는 인간의 악몽을 먹고 사는 동물로 알려져 있다. 물고기의 몸에 입 모양은 악어, 코는 코끼리, 발은 사자 모습을 한 전설 속의 동물을 말한다. 물의 신 바루나, 갠지스 강의 여신이 마카라를 타고 다닌다.
프레아 코 중앙 성소 6개의 탑 중 뒷편(서쪽)의 3개의 탑에는 여자들을 모신 탑들답게 여신상이 부조되어 있다. 크메르 여신들이 입고 있는 치마를 삼폿이라고 한다. 여신상이 시대에 따라 조금씩 변하는데, 삼폿이라는 의상의 변화도 볼만하다. 프레아 코에서는 치마의 길이가 발목을 덮을 정도로 길다. 그리고 여신상이 풍만하게 묘사되었다. 다산과 종족 번영을 반영하고 있는 듯하다.
프레아 코에서 앙코르 건축의 린텔의 정형성이 확립된다. 프레아 코의 중앙 성소의 탑들을 돌면 다양한 힌두 신화의 모티브가 된 영물들이 린텔에 부조되어 있다.
사진에는 칼라가 중앙에 있고, 말을 탄 신들이 좌우에 있고, 그 아래로 머리가 3개인 나가를 탄 신들이 나온다. 양 끝 좌우에는 마카라가 있다.
칼라(Kala)는 앙코르 유적의 문 위 린텔이나 기둥에 많이 조각되어 있다. 죽음의 신으로 사람이 죽으면 그 시체를 먹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배가 너무 고프면 선신이든 악신이든 잡아 먹는다고도 알려져 있다. 칼라 신이 유명해진 것은 시바 신과 관련한 신화에 나오면서부터이다. 사람의 시체가 많이 나오는 날은 괜찮았지만, 그러지 않을 때는 늘 굶어야 했는데, 너무 배가 고파서 시바 신에게 신선한 고기를 배불리 먹고 싶다고 청하자, 시바 신은 신선한 고기를 먹고 싶으면 칼라 자신의 몸을 먹으라고 한다. 그러자 칼라가 자신의 몸을 먹기 시작했는데, 아래턱까지 먹었다고 한다. 그래서 보통 윗 입까지만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이후 시바 신은 자신의 말을 잘 따른다는 이유로 신전 문 앞을 지키게 하였다. 일반적으로는 잡귀를 쫓고, 참배자를 보호하려고 조각해 놓는다. 칼라의 특징은 눈이 크고, 튀어나온 듯하며, 콧구멍이 크게 드러나 있다. 또하나 입이 귀 밑까지 찢어져 있고 아래턱이 없다.
프레아 코의 스투코에도 부조들이 있다. 시간적 여유가 된다면 프레아 코의 스투코의 훼손과 복원이 잘 된 힌두 신화 부조를 찾아 다니면서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다.
프레아 코 중앙 성소의 가짜문이다. 앙코르 유적에는 출입을 할 수 없는 가짜문을 만들어 놓은 경우가 많다. 프레아 코에도 세밀하고 아름다운 문양으로 가짜문을 만들어 놓았다.
프레아 코의 중앙 성소 탑들은 탑 사이의 간격이 비정형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옆에서 바라본 모습으로 남자를 모신 탑 중 중앙 탑(자야 바르만 2세)이 인드라바르만 1세의 아버지를 모신 탑보다 뒤로 들어간 것을 볼 수 있다.
프레아 코의 중앙 성소 뒷 모습이다. 뒷쪽에는 계단이 하나밖에 없다.
프레아 코의 중앙 성소 서쪽에는 허물어진 잔해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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