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교는 지방에 설립한 국립 교육 기관이다. 전주 향교는 고려 시대 말에 지방 교육을 위해 현재의 경기전 부근에 설립되었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학교의 학생들은 예나 지금이나 소란스럽기 마련이어서 1410년 경기전이 준공되자 신성한 성전 옆에서 시끄럽게 떠든다고 전주성의 서쪽 황화대(黃華臺) 아래로 이전하였다가 1603년(선조 36년)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대성전과 동무, 서무, 그리고 명륜당과 동재, 서재가 있으며 계성사가 있다. 계성사가 있는 향교는 드문데, 제주 향교에도 계성사가 있다.
전주 향교는 수백년 된 은행나무 고목들로 유명하다.
전주 향교 주변에 옛 관아(관청 건물)였던 동헌과, 새로 지은 전주 완판본 문화관이 있고, 전주 전통 문화관과 한벽당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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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암 서예관 | 전주 완판본 문화관 | 전주 전통 문화관
[가는 방법]
한옥 마을에서 걸어 간다.
KBS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의 일부 장면들을 전주 향교에서 촬영했다.
풍년 제과 네거리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면 향교길과 마주친다. 향교길을 따라 동쪽으로 간다. 조금 걸어가면 정면에 전주 전통 문화관이 보이고 왼쪽에 나무가 많은 곳이 전주 향교이다.
향교 서쪽 담을 따라 골목길이 있고, 안쪽에 향교의 입덕문이 있다. 왼쪽 담장 안은 전주 동헌이고, 돌아나가면 장현식 선생 고택이 있다.
전주 향교의 만화루. 바깥 삼문의 역할을 한다.
안으로 들어가면 안 삼문인 일월문이 있다.
일월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면 대성전이 정면에 있다. 대성전은 공자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공자의 위패 뿐만 아니라 맹자와 주자 등 여러 유학자들의 위패도 함께 모시고 있다. 매년 봄, 가을에 제사를 지내는데, 이를 석전대제(釋奠大祭)라 한다.
대성전 오른쪽에 동무, 왼쪽에 서무가 있다. 동무와 서무에는 우리나라 유학자 18명과 중국 유학자 7명 등 모두 25명의 위패(位牌, 신주(神主)라고도 부른다)를 모시고 있다.
동무(東廡). 동무란 글자 자체의 뜻은 동쪽 건물이란 뜻이다. 문묘 안에 위패를 모신 건물을 말한다.
서무(西廡). 동무와 서무 앞에 오래된 은행나무가 있다.
대성전 뒷 편에 명륜당이 있다. 명륜당은 학생들이 수업을 받는 강의동이다. 전주 향교의 명륜당은 지붕 양 옆으로 눈썹 지붕을 낸 건물이다. 이런 지붕 형태는 드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많이 있다.
명륜당과 서쪽에 있는 서재. 맞은 편에 동재가 있다. 동재와 서재는 학생들이 기거하며 공부하는 기숙사이다.
계성사는 공자, 맹자, 증자, 안자의 아버지의 위패를 안치한 사당이다. 조선조 말 사대주의가 극성을 부릴 때 계성사를 짓기 시작했는데, 제주 향교에도 계성사가 있다.
향교를 나오면 정면에 홍살문이 보인다. 앞은 전주천이다.
전주 동헌, 전주 전통 문화 연수원
향교 서쪽에 전주 동헌인 풍락헌이 있다. 동헌은 전주 판관이 집무하던 곳으로 현재 개념으로는 시장, 군수의 집무실이다.
1934년에 일제가 강제로 동헌을 철거하여 매각을 결정하자, 전주 유림인 류창근 선생이 구입하여, 완주군 구이면 덕천리로 옮겨 보존했다. 2007년 후손인 류인수 선생이 건물을 전주시에 흔쾌히 기부했고, 고증을 거쳐 2009년 향교 옆에 복원했다. 부속 건물로 안채, 중간채, 사랑채가 있다. 원래 동헌은 성 안에 있는 것으로 지금의 완산구 경원동에 있었다.
1920년대에 촬영된 것으로 추정되는 사진이다.
한옥은 나무로 지은 조립식 건물이기 때문에 뜯어서 옮길 수가 있다. 그런데, 저 현판(懸板)은 조선 시대 사진에도 가운데 있지 않고, 오른쪽에 있었다.
동헌 옆에 장현식 선생 고택이 있다. 독립 운동가 일송 장현식 선생의 고택을 후손들이 전주시에 기증해 동헌 옆으로 옮겨 지었다. 이 건물은 정교한 목재 가공 기술로 지은 건물로 건축적 가치가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전주시는 동헌과 장현식 선생 고택을 전주 전통 문화 연수원으로 활용하기로 했다고 한다.
일송 장현식 선생은 전북 김제의 대 부호였으며, 일제 침략기에 대동단에 운영 자금을 조달하고, 조선어 사전 편찬 자금을 지원했고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일제에 체포되었다. 그리고 민족 교육을 위해 중앙고보와 고려 대학교 본관 건축 비용을 내었고, 동아일보 윤전기 구입을 위해 큰 금액을 기부했다. 상해 임시 정부와 동북 무장 독립 단체에 큰 돈을 지원하는 등 전 재산을 독립 운동에 바쳤다. 해방 후 제 2대 전북 도지사를 지냈고, 6.25 전쟁 때 북한으로 끌려가 평양에서 돌아가셨다. 후손들은 일제 시대와 해방 이후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어왔지만 한번도 국가를 원망하지 않았다고 한다.
전주 완판본 문화관, 전주 전통 문화관, 한벽당
향교에서 나와 전주천 강변길(전주천 동로)로 간다. 동쪽으로 가면 전주 완판본 문화관, 전주 전통 문화관 , 한벽당이 있다.
전주 완판본 문화관. 조선 후기 전주에서 발간한 450여권의 책들을 보관, 전시하고 있다. 춘향전, 심청전, 동의보감 등이 있다.
전주 전통 문화관. 전통 예술 공연장인 한벽 극장, 전통 혼례식장인 화명원, 한식당인 한벽루, 전통 찻집 다향과 전통 문화 체험관인 경업당 등이 있다. 한식당인 한벽루의 비빔밥은 평이 좋다.
전통 혼례식장인 화명원.
전주 전통 문화관 동쪽 옆에 오모가리 탕을 파는 식당들이 있다. 오모가리 탕이란 메기, 쏘가리, 피라미 등 민물 고기 매운탕을 말한다. 오모가리라는 민물 고기가 있는 것이 아니고, 뚝배기의 전주 사투리가 오모가리이다. 옛날부터 한벽루 앞에 물놀이를 하러 많이 왔는데, 전주 시민들이 물놀이를 하고 매운탕을 먹었다고 한다. 식당이 세 개인데, 모두 오래된 식당으로 대를 이어 경영하고 있고, 각각 자신만의 맛을 자랑하고 있다.
정면에 보이는 다리가 한벽교인데, 한벽교 아래로 통과하면 바로 앞에 한벽당(한벽루)가 있다.
한벽당(한벽루). 1404년(태종 4년) 집현전 직제학을 지낸 최담이 지은 정자이다. 전주 8경의 하나이다.
전주천 주변
은행로 남쪽으로 가면 전주천을 건너는 남천교가 있다. 다리의 누각은 청연루인데, 신발을 벗고 올라갈 수 있다. 사진은 서쪽에서 본 모습이다.
남천교 서쪽에 있는 강암 서예관. 강암 송성용 선생의 작품과 추사 김정희 선생의 글씨 등을 전시하고 붓글씨 강습 을 하고 있다. 강암 송성용 선생께서 작품과 터를 전주시에 기증하여 1995년 개관하였다.
[입장료] 없음
[여는 시간] 09:00~18:00
[닫는 날] 없음
강암 송성용 선생은 일제 침략기 때 창씨 개명을 거부한 꼿꼿한 선비로 붓글씨의 대가였다. 호남 제일문, 내장산 내장사, 토함산 석굴암, 두륜산 대둔사, 불국사 자하문, 불국사 불국선원, 금산사 보제루, 백양사 화엄전, 화엄사 적멸당, 금오산 향일암 현판 등 전국의 많은 현판들이 강암 선생의 글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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