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우 세이 떼보다의 건축 연대는 확실하지 않다. 건축 양식과 장식을 볼 때 11세기 후반 내지 12세기 초에 유행한 앙코르 와트 스타일로 건축되었다. 벵 멜리아 비문에서 벵 멜리아, 반띠아이 삼레, 톰 마논, 차우 세이 떼보다가 같은 시기에 건립되었다고 나왔다. 그래서 수리야 바르만 2세가 축성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사원은 동향으로 지었으며, 시바 신을 위한 사원이지만, 다른 수리야 바르만 2세 때의 사원처럼 린텔이나 프론톤에 비슈누 신의 이야기가 부조되어 있다. 자야 바르만 7세 때에는 십자형 나가 테라스가 추가되었다. 이때 부처의 전생 이야기도 부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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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료] 앙코르 공통권 : 37US$(1일권) / 62US$(3일권), 72US$(7일권). 유적지마다 입장권을 검사한다
[관람 시간] 새벽~저녁 / 매표소 운영시간 05:00~17:30
[닫는 날] 없음
[가는 방법]
뚝뚝 : 12~15US$정도(1일)
택시 : 23~25US$정도(1일)
자전거 : 1~2US$정도(1일)
차우 세이 떼보다 부근에 있는 톰마논은 길 하나를 두고 서로 마주보고 있고, 건축 스타일이 비슷해서 쌍둥이 사원이라고 불리어진다. 그러나 차우 세이 떼보다 사원이 모든 면에서 조금 작다. 그리고 톰마논이 2개의 탑문(gopura)과 1개의 도서관을 가지고 있는 반면, 차우 세이 떼보다는 4개의 탑문(gopura)과 2개의 도서관을 가지고 있다. 톰마논이 20년 정도 빨리 건축되었었고, 훼손의 정도는 차우 세이 떼보다가 더 심하였다. 톰마논은 프랑스에서 1960년대에, 차우 세이 떼보다는 중국에서 2000년대에 복원하였다.
차우 세이 떼보다 주변 지도. 차우 세이 떼보다는 앙코르 톰 동쪽에 있다. 앙코르 톰 승리의 문에서 차우 세이 떼보다까지는 약 470m이다. | 코끼리 테라스에서는 약 2km 정도이다.
앙코르 톰 승리의 문 바깥쪽이다. 승리의 문 앞에 있는 다리(우유 바다의 휘젓기 조각, 해자)를 건너 따 프롬 방향으로 직진한다.
차우 세이 떼보다 사원은 동서 50m, 남북 40m로 직사각형이다. 출입은 톰마논 사이의 북쪽 도로에서 하나, 사원의 원래 출입구는 동쪽이다 . 동쪽 참배로를 따라 들어가도록 한다.
톰마논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뚝뚝이나 택시가 이곳에 내려준다. 동쪽 탑문쪽으로 간다.
차우 세이 떼보다 동쪽 출입구이다. 계단을 올라가서 십자형 나가 테라스를 지난다. 자야 바르만 7세 때에 약 1m 높이의 십자형 나가 테라스가 추가되었다.
위의 나가 테라스에서 동쪽을 바라보면, 길 양쪽으로 20개의 돌(링가)이 세워진 길이 보인다. 이 길을 따라 동쪽 씨엠립 강까지 연결되었다고 한다.
시바 신을 모시는 사원에 링가와 요니가 있게 된 전설이 재미있다. 옛날 옛적에 수행자들이 세상에 산적한 고민들을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있을 때, 시바 신이 지나가다가 이를 보고는 장난삼아 젊은 남자로 변신하고는 수행자들의 부인들을 유혹해서는 같이 춤추고 밤새 놀았다고 한다. 그 모습을 수행자들이 보고는 화가 나서 그 젊은 남자에게 성기가 잘리는 주문을 걸었으나, 시바 신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오히려 시바 신의 화만 부추겨서 시바 신은 스스로 성기를 자르고는 사라진다. 이후 세상의 모든 생물들의 생식이 중단되어 버린다. 수행자들이 삭티를 찾아가 이 문제를 의논하자, 삭티는 이 일이 시바 신이 자신의 성기를 자른 것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는 삭티 본인이 직접 여자의 성기 모양으로 변신해서 시바 신을 유혹하게 된다. 시바 신이 유혹에 넘어가 다시 자신의 성기를 붙이자, 모든 생물들의 생식도 다시 시작되었다. 수행자들은 시바 신이 젊은 남자로 변신한 것을 알아채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는 앞으로는 시바 신의 사원임을 알 수 있도록 사원 안에 생식의 상징인 링가와 요니를 모시기로 결정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왕이 씨엠립 강가까지 배를 타고 와서, 차우 세이 떼보다로 참배하러 왔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견해도 있다.
십자형 나가 테라스에서 바라본 동쪽 탑문. 테라스에서 동쪽 탑문으로 이르는 길은 한 계단 높게 만들었다. 앙코르 사원의 특징으로 도서관이 중앙성소 앞 양쪽에 있다.
십자형 나가 테라스에서 동쪽 탑문으로 가는 사이에 있는 돌다리는 8각형의 주춧돌이 3렬로 나열되어 밑에서 바치고 있다. 수리야 바르만 2세 이후에 추가 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바푸욘의 다리 형식과 비슷하다.
동쪽 탑문은 출입문이 3개이다. 다른 문들은 1개이고, 크기도 작다.
중앙성소가 동쪽을 향하고 있다. 그 앞으로 복도(안타랄라), 전실(앞방, 대기실, 만다파)이 있고, 동쪽 탑문으로 이어져 있다.
동쪽 탑문과 전실은 돌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이곳의 돌다리도 후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전실 외벽은 여신들로 조각되어 있고 내부에는 꽃무늬로 장식되어 있다.
중앙성소 출입문 옆으로 여신상이 새겨져 있다. 동쪽으로 난 한 개의 문을 제외하고는 3개의 문이 가짜문이다.
북쪽 탑문을 안쪽에서 바라본 모습. 차우 세이 떼보다의 유적들이 알록달록한 이유는 훼손이 심하여 복원과정에서 새 사암을 많이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복원전 탑문의 계단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두 무너져 있었다.
북쪽 탑문 주변을 보면 라테라이트로 만든 벽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동서 50m, 남북 40m로 라테라이트 담벼락을 만들었다.
라테라이트(laterit)는 열대 지방에 분포하는 적갈색의 흙이다. 라테라이트는 열대 우림의 고온 다습한 환경때문에 습기가 있을때는 부드럽지만, 건조한 환경에 노출되면 토양의 유기물이 제거되면서 매우 단단해진다. 화학 반응으로 철분이 산화되면서 붉은 색을 띤다. 앙코르 유적에서는 라테라이트 벽돌을 사용하여 그 자체만으로 담벼락을 만들기도 하였다. 앙코르 유적이 오랫동안 비바람에 견딜 수 있었던 것은 건물 내부에 라테라이트로 전체적 형태를 잡은 다음, 겉 부분만 사암으로 아름답게 장식하였기 때문이다.
서쪽 탑문에서 차우 세이 떼보다를 바라본 모습. 유적의 규모가 작으므로 관광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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