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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정당
선정전 동쪽에 있는 건물이 희정당이다. 희정당부터는 창덕궁의 내전이다. 추천 관람 경로는 선정전과 희정당 서 행각 옆으로 난 길을 따라서 시계방향으로 한 바퀴 도는 것이 좋다.
희정당의 남쪽 행각과 정문이다. 1920년 희정당을 중건하면서 자동차가 쉽게 진입할 수 있도록 정문에 현관을 만들었다.
남쪽 행각 정문에서 바라본 희정당.
희정당은 원래 침전이었다. 선정전이 공식집무실(편전)의 역할을 하기에 좁고, 국장을 위한 혼전으로 사용되면서 희정당이 편전의 기능을 하게 되었다. 원래 이름은 숭문당이었다. 연산군 때에 희정당으로 바꾸었다. 동궐도를 보면 희정당은 마당에 연못도 있고 여러 개의 돌 기둥 위에 만든 작은 누마루집이었다. 화재 후 55간짜리 강녕전을 15간 자리에 옮기면서 모양이 많이 변하여 원래의 희정당도 강녕전도 아닌 모습이 되어 버렸다. 사진에 보이는 굴뚝은 동궐도에는 보이지 않는 굴뚝이다. 궁궐 전각 앞에 굴뚝을 내는 경우는 없다.
1917년 11월 19일 오후 5시에 대조전에서 화재가 나서 희정당, 대조전 등 내전이 불타 없어졌다. 일제는 창덕궁을 재건하기 위한 목재 조달 명분으로 강녕전을 창덕궁으로 옮겨 와서 1920년 희정당을 다시 지었다. 경복궁 파괴 정책의 일환으로 고의적인 방화로 보는 설이 있다. 그 근거로 경복궁과 창덕궁의 내전 모두 크게 훼손된 점과 그 당시 이루어지던 조선 궁궐 계획적 훼손과 시기적으로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다.
오른쪽이 희정당이고, 왼쪽이 대조전으로 들어가는 선평문이다. 희정당과 대조전은 행각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희정당 뒷쪽으로 가야 희정당 내부를 관람할 수 있다. 희정당 내부에는 쪽마루, 카펫, 유리 창문, 샹들리에 등을 설치하였다.
대조전 일원
왕비의 숙소로 들어가는 선평문이다.
왕비의 생활공간인 대조전이다. 1917년 화재로 경복궁의 교태전을 헐어 대조전을 재건하였다. 용마루가 없다. 경복궁의 교태전과 달리 전면에 월대가 있다. 대조전 오른쪽 건물은 홍복헌으로 1910년 경술국치를 결정한 마지막 어전회의가 열렸던 곳이다.
대조전 서쪽에 수라간, 경훈각으로 나가는 작은 문(경극문)이 있다. 관람객들은 보통 대조전만 관람하고 희정당으로 다시 나가는데, 경훈각 뒷편에 아름다운 화계가 있다.
구중궁궐이라는 말처럼 대조전 주변은 건물들이 복잡하게 들어서 있다. 그리고 주변 건물들이 내부로 서로 통하도록 복도와 행각으로 연결하였다. 왼쪽의 보이는 건물은 경훈각이다. 원래는 2층 건물로 1층은 경훈각, 2층은 누를 만들어 징광루라고 하였다.
경훈각 뒷쪽으로 가면 화계가 조성되어 있다.
화계 동쪽 끝에는 가정당으로 나가는 천장문이 있다. 홍예를 만들고 학과 구름을 새겨 넣었다.
청향각의 굴뚝. 길상 문자와 토끼 문양이 새겨져 있다. 토끼는 여성과 달을 상징하는 동물이다.
성정각 일원
성정각 일원이다. 성정각은 희정당 옆에 있다. 세자는 떠오르는 태양과 같아 궁궐의 동쪽에 숙소를 마련하였다. 그래서 동궁이라고 한다.
성정각은 세자를 교육하던 곳이다. 일제 시대에는 내의원으로 이용되기도 하였다. 단층 건물에 동쪽에 2층 누를 붙여 만들었다.
성정각 큰 길 맞은편에 6각 누각인 삼삼와가 보인다. 원래 이 일대는 동궁터로서 사진에 보이는 큰 길이 나 있는 곳에도 중희당이 들어서 서로 복도로 연결되었다고 한다.
6각 누각인 삼삼와를 기준으로 왼쪽에 칠분서, 오른쪽에 승화루가 모두 복도로 연결되어 있다. 이 곳들은 서고와 도서실로 사용하였다.
성정각과 삼삼와 사이의 중희당 터. 지금은 후원으로 가는 매표소와 창경궁으로 나가는 함양문이 있다.
낙선재 일원
성정각 동쪽에 낙선재가 있다. 왼쪽의 건물은 승화루이고, 오른쪽의 육각형 정자는 상량정(평원루)이다. 두 정원은 연결되어 있고, 통과하는 문은 아름다운 원형의 만월문이다.
낙선재는 헌종의 서재이면서 사랑채였다. 낙선재 옆으로 경빈의 처소인 석복헌, 순원왕후의 처소인 수강재가 있다. 단청을 하지 않았다. 상량정(평원루), 창살, 벽체 무늬는 청나라 건축양식의 영향을 받았다. 지금의 낙선재는 1996년에 복원하였다.
낙선재 일원의 전각들 뒤에는 각각 후원이 있다. 사진은 낙선재와 그 후원인 상량정이다. 전각과 후원사이에는 계단을 만들어 화계를 조성하고, 굴뚝과 괴석들을 놓았다.
후궁 경빈 김씨가 살던 석복헌이다. 낙선재 일원의 건물들은 후궁인 경빈을 위해 새로 만든 것으로 후궁에게 내려진 혜택으로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헌종은 첫번째 왕비가 죽자, 두번째 왕비의 간택에 직접 참여하였다. 마음속으로 경빈 김씨를 점직어 두었으나, 왕비는 명헌왕후 홍씨가 되었다. 왕자 출산을 문제 삼아 새로 후궁을 맞으니 경빈 김씨였다. 경빈은 사대부 김재청의 딸로 후궁이 되었지만, 경빈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석복헌은 이러한 배경에서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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