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의 후원은 넓은 지역에 다양한 모양의 정자들이 자연 지형을 그대로 살리면서 연못, 수목, 괴석 등과 어울려 조선 시대 최고의 정원으로 평가받고 있다. 창덕궁 후원 지역은 산림이 울창하여 4계절 산책하기에도 좋고 풍경도 아름답다. 후원의 정자는 상대적으로 작은 편인데, 외국의 정자들이 정자의 건물 그 자체를 보여주기 위해 만들었다면, 한국의 후원의 정자는 정자에 앉아서 주변 풍경을 바라보는 것에 중점을 두고 만들었다. 특히 단풍이 들거나 눈이 오면 관람객들이 후원을 많이 찾는다.
창덕궁 후원의 공식적인 이름은 없다. 한국 정원들은 배산임수 원칙에 따라 휴식 공간을 보통 건물 뒷쪽에 만든다. 창덕궁의 경우에도 궁궐 뒷쪽에 정원을 만들고 후원이라 불렀다. 궁궐 안의 정원이라는 뜻으로 내원, 일반인이 들어 갈 수 없는 왕실 정원이라서 금원이라고도 한다. 후원을 관리하던 관청 이름이 상림원에서 조선 말기 비원으로 바뀌었다. 이 시기에 일본에 의해 후원이 일반인들에게 계획적으로 공개되면서 일반인들 사이에서 비원으로도 많이 불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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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 관람 경로도이다. 관람 경로는 궁궐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다.
성정각 동쪽에 있는 함양문 매표소이다. 이곳에서 부터 후원 관람이 시작된다.
창덕궁 후원 입장권은 창덕궁 공식 홈페이지에서 인터넷 사전 예약을 할 수 있다. 봄에 꽃이 많이 피거나 가을에 단풍이 절정을 이루는 시기에는 인터넷 예약이 매진되는 경우가 많다. 현장 판매 분량도 일찍 마감 되므로 일찍 창덕궁을 찾는 것이 좋다.
후원은 문화재 해설사의 안내를 따라 제한 관람하는 지역이다.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그 부근에서 사진을 찍거나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주고 있다.
부용지
사각형 연못인 부용지를 중심으로 주합루, 영화당, 부용정이 있다. 부용지 중심에 둥근 섬을 만들고 소나무를 심었다. 예전에는 부용지에 배를 띄워놓고 놀았다고 한다.
2층 전각인 주합루는 정조가 왕이 되면서 만들었다. 1층은 규장각으로 왕실 도서관이고, 2층은 주합루로 누마루를 갖춘 열람실 내지 정사를 토론하는 장소로 활용하였다. 서향각은 서고이다. 주합루로 오르는 계단 입구에 큰 문 하나, 작은 문 두개로 이루어진 어수문이 있다. 어수문의 뜻은 물고기는 물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는 말로 왕과 신하의 관계를 비유한다. 주합루 일대는 학문과 교육을 하던 곳으로 조선 후기의 문예 부흥을 일으킨 곳이다.
일제 강점기 때 이토 히로부미는 규장각과 주합루를 연회 장소로 이용하였다. 서향각은 누에 치는 곳으로 만들었다. 이 때 규장각의 책들을 경성제국대학으로 옮졌다. 이후 서울대학교에 있는 규장각에서 보관하고 있다.
영화당 앞쪽으로 춘당대 마당이 펼쳐져 있다. 이 곳에서 과거 최종 시험, 연회, 활쏘기 등 여러가지 행사를 했다. 지금은 창경궁과 담장을 두고 있지만, 예전에는 창경궁 춘당지까지 확트여 있었다고 한다.
영화당에서 바라본 부용정(왼쪽)의 모습이다. 부용정의 한쪽면이 연못에 발을 담그고 있는 형상이다. 오른쪽의 건물은 사정기비각이다.
애련지 부근
불로문은 두 개의 주춧돌 위에 한 장의 큰 통돌로 만든 돌문이다. 불로문을 통과하면 만수무강과 불로장생한다고 한다. 만수무강을 빌면서 문을 통과하면...
오른쪽으로 애련지와 애련정이 보인다. 처음 숙종때에는 네모난 연못 가운데에 섬을 쌓고 정자를 지었다고 한다. 숙종이 연꽃을 좋아하여 애련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지금은 섬은 없고 애련정은 북쪽 끝에 걸쳐 있다. 애련정을 정면에서 바라보면 정자 뒤로 괴석과 산이 병풍 역할을 하고, 앞에는 연꽃이 피고, 북서쪽 연경당에서 흘러내려오는 물이 작은 인공 폭포가 되어 떨어진다.
애련지에서 남쪽을 보면 단청을 하지 않은 두개의 건물이 있다. 왼쪽이 의두합(마루 이름이 기오헌), 오른쪽이 운경거이다. 할아버지 정조 때의 왕도 정치의 부활을 꿈꾸던 효명세자가 책을 읽던 서재이다. 운경거는 한 칸 반짜리 건물로 창덕궁에서 가장 작은 건물로 마루 밑으로 5개의 구멍이 뚫힌 것이 보인다. 지금은 단 위로 건물이 개방되어 있지만 예전 모습을 보면 담장과 계단 위에 문이 있었다.
애련지와 연경당 사이에 작은 연못이 있다. 이 부근에 어수당이라는 건물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없다.
문화재 해설사의 설명이 끝나면 자유롭게 주변 지역에서 사진도 찍고 관람할 수 있는 시간을 준다.
연경당
연경당 입구로 솟을 대문인 장락문이다. 운하수를 뜻하는 다리 옆 괴석에 두꺼비가 새겨져 있다. 장락문을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사랑채로 들어가는 장양문과 왼쪽으로 안채로 들어가는 수인문이 있다.
연경당은 효명세자가 아버지 순조를 위해 만들었다. 지금의 연경당은 고종이 1865년쯤에 새로 지은 것이다. 사대부 살림집처럼 꾸몄다. 왕의 사랑채인 연경당과 서재인 선향재를 비롯하여 120여 칸 규모였다. 선향재는 청나라풍 벽돌을사용하고 도르래식 차양을 설치하였다.
효명세자가 창건할때의 연경당은 남쪽이 터인 ㄷ자형 건물이었다고 한다. 창건 그 다음해에 어머니의 40세 생일 잔치를 이 곳에서 하였다. 그래서 연경당을 연희 공간으로 보는 설이 있다. ㄷ자형 연경당은 객석이 되고 안마당은 무대가 되고, 동쪽의 부속 건물들은 출연 대기장소로 이용하였다고 한다.
왕비의 안채로 사랑채와는 담으로 분리돠어 있지만, 하나의 전각으로 내부는 연결되어 있다.
농수정.
존덕정 일원
부채꼴 모양의 관람정. 관람정과 승재정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원래는 네모난 연못과 둥근 연못이 3개가 연이어 있었다. 관람지는 조선 말 하나의 곡선 모양으로 바뀌었다.
육각형 형태의 겹지붕을 가진 존덕정이다. 1644년 인조 때 만들어져 이 일대에서는 가장 오래된 정자이다. 처음에는 육면정이라고 불리다가 존덕정으로 바뀌었다. 본 건물을 먼저 짓고 그 처마에 잇대어 지붕을 만들었다. 바깥지붕을 가는 기둥 3개가 쌍이 되어 바치고 있다. 동궐도에는 네모난 연못과 반월형 둥근 연못이 보이나 지금은 두개를 붙여 버렸다.
사모지붕을 한 승재정이다. 관람정 맞은편 남쪽 약간 높은 언덕 위에 있다. 승재정에서 내려다 보이는 관람지와 관람정의 풍경이 아름답다.
옥류천 일원
옥류천 입구의 취한정이다. 취한정은 관람 코스에서 언덕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 지대가 낮고 나무가 많아 여름에도 시원하다. 정자에 어울리는 이름이다. 오른쪽에 농산정이 있다. 왼쪽에 나무에 가린 정자는 소요정이다.
옥류천은 후원 지역 중 가장 북쪽 골짜기에 있다. 소요정, 청의정, 태극정 같은 작은 정자들이 소요암을 중심으로 여러 방향으로 분산되어 형태의 정원이다. 청의정은 볏짚으로 둥글게 지붕을 만든 정자로 현재 궁궐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초가이다.
소요암과 옥류천. 1636년 인조는 소요암의 바닥돌을 파서 물길이 둥글게 휘돌아 나오다가 떨어지도록 작은 폭포를 만들었다. 옥류천에서 흐르는 물 위에 술잔을 띄우고 시를 짓는 유상곡수연을 하였다. 바위의 옥류천이라는 글자는 인조가 쓴 글자이고, 오언절구 시는 숙종이 옥류천의 풍경을 읊은 시이다.
4세기에 중국 동진 소흥(현재 샤오싱)지방 난정에 왕희지와 명사 40명이 모여 유상곡수라는 시회(詩會)를 열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 때 나온 시를 모은 시집이 난정집서이다.
경주 포석정도 유상곡수를 하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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