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宗廟)는 조선의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왕실 사당으로 왕실의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조선 시대에는 정전의 대제를 1년에 다섯 차례를 지냈지만, 현재는 1년에 한번 종묘 제례 보존회에서 주최하여 5월에 제사를 지낸다. 종묘에서 지내는 제사는 조선 왕조의 제사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중요한 것이었기 때문에 종묘 대제(宗廟大祭)라고 한다. 500년 왕조의 모든 왕들의 신주를 모시고 옛날 격식에 따라 제사를 지내는 곳은 세계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정전은 19실로 우리나라 단일 목조 건물로서는 정면이 가장 길며(총 101m), 특히 수평성이 강조된 독특한 형식으로 만들어지게 된다. 화려한 조선의 궁궐과는 달리, 종묘는 조용하고 엄숙한 공간으로서 주로 간결하고 웅장한 맞배 지붕을 사용하였다. 1995년 세계 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조선조에서는 처음 7대조를 정전(正殿)에 모시고, 그 후의 왕들의 신주는 정전에 모셨다가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영녕전(永寧殿)으로 옮겼다. 그러나 업적이 높은 왕들의 신주는 그대로 정전에 모셔서, 정전에는 19위의 왕들의 신주가 있고, 영녕전에는 15위의 왕들의 신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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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료] 1,000원
[여는 시간 (입장 마감 시간)]
[시간제 관람(일~월, 수~금)] 09:20 10:20 11:20 12:20 13:20 14:20 15:20 16:20 * 3월~9월 》17:00 추가.
[일반 관람(토)] 3월~9월 》09:00~18:00 (17:00) / 10월~2월 》09:00~17:30 (16:30)
[닫는 날] 화요일
* 5대 궁궐 휴일 : 월요일(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화요일(경복궁, 종묘)
신주는 돌아가신 분의 이름을 적은 나무패를 말한다. 옛날 사람들은 신주에 죽은 사람의 영혼이 있다고 간주해서, 자손들이 신주를 모시고 해마다 제사를 지냈다. 제사 상을 차릴 때 향을 피우면 영혼이 잠시 돌아 온다고 생각했다. 물론 실제로 그렇게 생각했다기보다는 그런 제사 형식을 취한 것이다.
신주는 영정 사진인 셈이다. 현대의 일반 제사에는 신주 대신 영정 사진을 모신다.
조선은 농업과 유교를 기반으로 한 국가였다. 그래서 태조 이성계는 조선의 중요한 상징으로 경복궁을 중심으로 서쪽에 땅과 곡식의 신을 모시는 사직단을 만들고, 동쪽에 왕실 사당인 종묘를 만들었다.
종묘의 외대문을 들어서면...
울퉁 불퉁한 돌로 만든 길(삼도)이 나온다. 3개의 줄은 각각 다닐 수 있는 신분이 달랐다. 가운데 가장 높은 길은 신이 다니는 신로, 동쪽은 왕이 다니는 어도, 서쪽은 세자가 다니는 세자로이다. 거친 박석을 깐 이유는 제사를 지내기 전에는 몸가짐을 조심스럽게 행동하라는 의미로 깔았다. 삼도는 정전으로 연결되어 있다. 동쪽에 지당(池塘)이라는 연못이 있다.
지당. 연못 앞으로 건물들이 보인다. 망묘루, 공민왕 신당, 향대청 일곽이다.
망묘루이다. 향대청 남쪽에 위치하는 망묘루는 제향(祭享)때 임금이 머물면서 사당을 바라보며 선왕(先王)과 종묘사직을 생각한다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망묘루는 건물 중 한 칸이 누마루로 되어 있다.
* 공민왕 신당 - 고려 31대 공민왕을 위하여 종묘와 함께 창건된 것으로 정식 명칭은 '고려 공민왕 영정 봉안지당' 이며 공민왕과 노국대장공주가 함께 있는 영정과 준마도가 봉안되어 있다.
향대청은 종묘에 사용하는 물건을 보관하는 창고이다. 제사에 나갈 관리들이 기다리면서 휴식을 취하는 공간이기도 했다. 남북으로 긴 뜰을 사이에 두고 동쪽과 서쪽에 건물이 배치되어 있다.
재궁 입구이다.
정전 동남쪽에 위치한 재궁은 제사 하루 전에 정문으로 들어온 왕과 세자가 머물면서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하면서 제사를 준비하던 곳이다. 어숙실이라고도 한다. 재궁 북쪽에는 임금이 머무는 어재실, 동쪽에는 세자가 머물던 세자 재실(世子齋室)이 있고, 서쪽에는 어목욕청(왕이 목욕하는 건물)이 있다.
재궁에서 북서쪽을 보면 정전이 보인다.
정전 동쪽길을 따라가면 전사청이다.
전사청은 종묘 제사에 사용하는 물건들을 보관하면서 제사의 진찬 준비를 하던 곳이다. 뜰을 가운데 두고 그 주위로 건물을 ㅁ자형으로 배치하였다. 주실은 정면 7칸, 측면 2칸이고 옆에 온돌과 마루방을 들여 행각으로 꾸몄다.
정전의 동문 옆에는 있는 수복방은 종묘를 지키고 제사를 돕는 낮은 계급의 관리나 노비가 지내던 곳이다.
제정은 향제(享祭)에 사용되는 우물을 말하는데 정전 전사청(典祀廳)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고 찬게 특이하다고 한다. 네면을 담장으로 둘렀고, 남쪽에 우진각 지붕의 일각문(一脚門)이 있다.
정전 수복방 앞에는 정전에 올릴 제사 음식을 미리 검사하던 찬막단이 있다.
정전
종묘 정전의 정문(남신문)이다. 정문은 신(혼백)이 다니는 길이다. 삼도의 신로와 연결되어 있다. 사람이 출입할 수 없는 문이므로 정전의 동쪽 문이나 서쪽으로 들어간다. 동문은 왕이 드나드는 문이고, 서문은 악공이 드나드는 문이다.
정전은 종묘의 중심건물이다. 종묘 정전은 매칸마다 신위를 모신 신실인 감실이 있다. 신실의 판문 앞에는 제례를 위한 최소한의 툇간을 갖추고 있다. 감실은 열아홉 칸, 신실 양 옆으로 각각 두 칸의 협실, 그리고 협실 양 끝에서 직각으로 앞으로 꺾여 나와 마치 신실을 좌·우에서 보위하는 듯한 형태를 취하고 있는 동·서월랑 다섯 칸으로 구성되어 있다. 건물 내부에 모실 신위가 늘어날 때마다 감실을 몇 차례에 걸쳐 옆으로 증축하여 단일 목조 건축물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길다(101m). 정전 앞에 동서 109m, 남북 69m의 묘정 월대가 넓게 펼쳐있다.
참고로 일본 쿄토의 산쥬산겐도는 118m(기단 포함 120m)이다.
월대 가운데에는 신실로 통하는 긴 신로가 남북으로 나 있으며, 그 북쪽 끝에 상월대와 기단이 설치되어있다.
사진 오른쪽의 가운데 건물이 정전의 정문이다. 앞쪽에 3칸짜리 건물이 칠사당이고, 뒤쪽의 16칸 짜리 건물이 공신당이다.
앞쪽의 노란 동그라미는 칠사당으로 종묘 창건 때부터 정전 울타리 안 월대 남서쪽에 있었다. 맞배 지붕의 정면 3칸, 측면 1칸 짜리의 작은 집이다. 정면에는 판문과 격자창을 두고 나머지 3면은 전돌로 벽을 쌓았다. 칠사란 인간의 삶과 생활에 관여하는 일곱 신을 의미한다. 봄에 모시는 사명과 사호, 여름의 사조, 가을의 국문과 공려, 겨울의 국행과 그밖에 중류의 7사에 제사 지내는 곳이다.
뒷쪽 노란색 동그라미는 공신당으로 조선 왕조 역대 공신들의 위패(83신위)를 모신 곳이다. 정전 울타리 안 월대 남동쪽에 있다. 창건 때는 5칸에 불과하였으나 공신이 늘어남에 따라 나중에 9칸으로 늘렸다가 지금은 16칸의 긴 건물로 되었다. 칠사당과 같은 구조 형식으로 매우 간소하게 되어 있는데 왕의 신실과 한 울타리 안에 있어서 일부러 그 형식을 낮추었다고 생각되며 16칸이라는 보기 드문 건축 형태임에도 불구하고 정전에 와서도 자칫 그냥 지나치기 쉬운 건물이다.
악공청으로 종묘 제례시에 악사들이 대기하고 연습하기도 하는 건물이다. 정전과 영녕전 부근에 위치하고 있다.
영녕전
영녕전 일원이다.
영녕전 정문인 남문(신문)이다.
영녕전(永寧殿). 세종 때 종묘의 신실이 부족하게 되어 정전 서쪽에 새로 지었다. 영녕은 조종과 자손이 길이 평안하라는 의미이다. 영녕전 지붕은 가운데 태실 4칸은 높게, 좌우 협실 6칸은 태실에 덧붙이듯이 한 단 낮게 하였다.
영녕전.
종묘 제례
종묘 대제에는 종묘 제례가 행하여지며, 각 제사의례에 맞추어 경건한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종묘 제례악이라는 음악과 무용을 한다. 제례는 신을 맞이하는 영신례, 신이 즐기는 음복례가 행해지고, 신을 보내 드리는 송신례를한 후에 축과 폐를 망료위에 불사르는 것으로 끝난다.
종묘 대제는 매년 5월 첫째주 일요일에 한다. 장소는 종묘이며, 세부 일정으로 영녕전 제사(09:00~11:30), 어가 행렬(11:20~12:20), 정전 제사(13:00~14:40)가 있다.
어가 행렬 재현.
종묘 제례악은 종묘에서 제사할 때 연주하는 기악, 노래, 무용의 총칭을 말한다. 세조때 처음으로 종묘제향에서 연주되었다. 정전 앞 계단 상월대에서 노랫말이 없는 음악을 연주하는 악단을 등가라고 한다. 계단 아래 하월대에서 노랫말 있는 음악을 연주하는 악단은 헌가라고 한다. 시대에 따라 악기 편성은 조금씩 변화하였다. 종묘 제례악은 편종, 편경 같은 타악기가 주선율이 되고, 당피리, 대금, 해금, 아쟁 등의 현악기가 장식적인 선율을 더한다. 이 위에 장구, 징, 태평소, 절고, 진고 등의 악기가 다양한 가락을 구사하면서 노래가 중첩되면 중후하면서도 화려해진다.
종묘 제례에서 추는 춤을 일무라고 부른다. 일은 전후 좌우로 늘어선 열을 의미한다. 선왕들의 문덕과 무공을 칭송하기 위해 꿩 깃털로 장식한 막대기, 목창, 목검 등을 들고 춘다. 세조 때 종묘에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조선시대 일무는 36명이 추는 육일무를 하였으나, 대한제국 이후 현재까지 64명이 추는 팔일무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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