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창덕궁
창덕궁

창덕궁 (Changdeokgung Palace)

창덕궁은 태종 5년(1405)에 경복궁에 이어 두 번째로 지은 궁궐이다. 경복궁의 보조 궁궐로 지었으나 조선의 왕들은 창덕궁에서 주로 살았으며 사실상 법궁 역활을 하였다. 1592년 조왜 7년 전쟁때 화재로 불타 없어졌다. 이 후 경복궁의 터가 불길하다고 하여 경복궁은 재건되지 못하고 1610년 창덕궁만 재건되었다. 이후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재건할 때 까지 가장 오랫동안 조선 제일의 궁궐이 되었다. 내전 역할을 보강한 창경궁과 경계 없이 사용되었으며 경복궁의 동쪽에 있어 창경궁과 함께 동궐로도 불렸다. 창덕궁은 조선 고유의 궁궐 건축 양식과 조선 시대 정원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궁궐이며 조선의 궁궐 중 그 원형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궁궐이다. 자연 산세에 맞추어 건물들이 비교적 자유롭게 배치되었지만, 규모와 건물의 쓰임새가 자연과 조화를 이루었다. 특히 창덕궁의 후원은 넓은 지역에 다양한 모양의 정자들이 자연 지형을 그대로 살리면서 연못, 수목, 괴석 등과 어울려 조선 시대 최고의 정원으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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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입장료] 일반 관람 》3,000원 / 후원 특별 관람 》5,000원(+ 후원 매표소로 가기 위해서는 창덕궁을 지나가야 하므로 일반 관람권(3,000원)을 구입하여야 한다. 총 8,000원)

* 5대궁 연계 통합 관람권 : 1장의 관람권으로 경복궁, 창덕궁(후원 포함), 창경궁, 덕수궁, 종묘 관람. 10,000원. 유효기간 1개월. 후원과 경복궁을 관람한다면 통합권을 구매하는 것이 좋다.

[여는 시간 (입장 마감 시간)] 

[일반 관람] 4월~10월 》09:00~18:00 (17:00) / 12월~2월 》09:00~17:00 (16:00) / 11월, 3월 》09:00~17:30 (16:30)

[후원 특별 관람] 4월~10월 》09:00~18:00 (17:00) / 12월~2월 》09:00~17:00 (15:00) / 11월, 3월 》09:00~17:30 (15:30)

* 5대 궁궐 휴일 : 월요일(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화요일(경복궁, 종묘)

[닫는 날] 월요일

경복궁은 넓고 평평한 대지 위에 직선의 축을 따라 전각들이 좌우 대칭을 이루면서 들어서 있다. 창덕궁은 산자락에 자리잡아 골짜기 안쪽 평평한 지역에 건물들과 정자들을 배치여 조금씩 축이 틀어져 있다. 그러나 산의 지형 지세에 따라 자연스럽게 배치되어 비정형적 조형의 아름다움과 편안한 느낌을 준다. 후원 지역을 산책하면서 골짜기마다 나타나는 연못과 정자에 앉아 주변 자연을 바라보면 4계절에 따라 변하는 창덕궁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다.

[크게 보기]

돈화문 일원

돈화문은 창덕궁의 정문이다. 5대 궁궐 정문 중에서 유일하게 정면이 5간으로서 2간은 막아놓고 3간만 사용하였다. 돈화문은 왕의 행차 때에만 사용했고, 신하들은 서쪽의 금호문을 사용했다. 돈화문 2층에는 종과 북을 달아 통행금지 시간에는 종을, 통행금지 해제시간에는 북을 쳐서 시간을 알렸다.

궁궐의 정문은 보통 외전의 정전과 일직선상에 만든다. 창덕궁의 경우에는 창건 당시 이 곳에는 이미 종묘가 만들어져 있었다. 그래서 창덕궁의 정문을 인정전, 인정문과의 일직선 상이 아닌 종묘의 서쪽에 만들었다.

돈화문은 원래는 높은 월대 위에 2층으로 만들었다. 일제 초기에 돈화문 앞으로 도로를 내면서 월대가 묻혔다. 1997년 복원하여 도로 가까이 가면 계단과 소맷돌을 볼 수 있다. 돌계단을 만들 때 계단의 면에 해태나 용 등의 동물을 조각하여 경사지게 올려놓는 돌을 소맷돌이라고 한다.

돈화문을 지나 창덕궁으로 들어오면 주변에 300~400년 정도 된 회화나무가 있다. 회화나무는 가지가 자유롭게 뻗어나가 학자에 비유된다. 이 곳에 신하들이 근무하는 관청들이 있어 회화나무를 심었다.

창덕궁은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창덕궁 밖에서 바라본 금호문이다. 창덕궁의 서문이다. 오행설에 따르면 서쪽은 금이고, 동물로는 호랑이이므로 금호문이라고 하였다. 승정원 승지나 홍문관 등 궁내 관청에 근무했던 신하들이 주로 이용하던 문이다.

금천교를 지나면 진선문이 나온다.

금천교는 중앙이 약간 올라간 완만한 곡선 형태를 띠고 있다. 금천교 옆을 살펴보면 반달 모양의 홍예 중간에 금천을 지키는 귀면이 있다. 귀면 밑으로 동물(북쪽은 거북이)을 얹어 놓았다. 다리의 가로선을 따라 하마같이 생긴 동물을 조각해 넣었다.

금천교-진선문-숙장문이 일직선이 아니라 조금씩 틀어져 있다. 동궐도를 보면 일직선으로 되어 있었다.

동궐도는 창덕궁과 창경궁의 전체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도화서 화원들이 그린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건물, 다리, 담장 등을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각 전각의 이름도 표시하고 있다. 그래서 궁궐 연구와 복원의 자료로 사용하고 있다. 일본이 금천교 공사를 하면서 위치를 옮긴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나, 확실한 증거는 없다.

진선문. 진선이란 말은 착한 말을 올리다라는 뜻이다.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왕에게 직접 재판을 청할 수 있는 신문고가 있어 붙은 이름이다. 태종은 중국의 등문고 제도를 받아들여 신문고 제도를 만들었다. 경국 대전에 의거하여 소장으로 재판을 받아야 하는 절차도 거쳐야 하고, 돈화문을 지키는 병사들로 인하여 사실상 신문고를 이용하기는 어려웠다고 한다.

인정전 일원

진선문을 지나면 정면에 숙장문이 보이고, 왼쪽에 인정문이 보인다. 인정문으로 들어가면 정전인 인정전이 있고, 숙장문으로 가면 빈청, 내전, 낙선재로 갈 수 있다.

숙장문을 나가면 오른쪽에 빈청이 있다.

진선문에서 숙장문쪽으로 갈수록 외행각이 좁아지면서 마당이 사다리꼴 모양을 하고 있다. 숙장문 옆에 있는 산맥 때문에 자연 지형을 살리면서도 마당 공간을 넓게 사용하기 위해 사다리꼴로 만들었다. 또한 사람의 시선도 인정문쪽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인정문은 인정전의 정문이다. 인정문 앞 넓은 마당에서 왕과 신하가 조회를 열기도 하였다. 인정문은 왕위 즉위식 등 중요한 행사가 치러지기도 했다. 또한 죄인을 신문하는 친국이 인정문 앞에서 열리기도 하였다. 인정문과 인정전의 용마루에는 다른 궁궐의 정전에서는 없는 오얏꽃 문양이 있다.

일제의 조선 왕조 말살 정책 중 하나는 조선을 이씨 왕조로 만들려고 하였다. 일본 왕 밑의 씨족 국가로 만들기 위해 고종을 이태왕, 순왕을 이왕이라 불렀다. 오얏꽃은 이씨를 상징한다. 인정문에 오얏꽃 문양이 들어간 시기도 순종이 창덕궁으로 올 때 새긴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인정전은 창덕궁의 정전이다. 신하들과의 조회, 왕의 즉위식, 외국 사신 접견, 과거 시험등 국가의 중요한 행사를 치르던 곳이다. 어도 좌우로 품계석이 있다. 2단의 월대 위에 2층 건물로 지었다. 밖에서 보면 2층 건물이지만 내부는 높은 천장이 있는 통층이다.

인정전은 경복궁의 근정전과 비교하면 월대 높이도 낮고 난간도 없다. 월대 주변에 드므와 부간주를 두어 화재 예방과 액운을 막아주기를 기원하였다. 일제 시대에 마당의 박석을 없앤 것을 최근에 복원하여 기계로 다듬어 네모나게 반듯하게 깔아 놓았다. 사진 왼쪽의 인정전 서쪽 행랑의 첫번째 건물은 제사 지낼 향을 보관하던 향실이다.

인정전의 내부 바닥은 원래 전돌이 깔려 있었으나 지금은 마루로 되어있다. 1908년 커튼, 전등 , 유리 창문을 달아 서양의 문물을 가미시켰다.

선정전

인정전 동쪽 행각에 선정전으로 나가는 문이 있다. 청기와가 보이는 건물이 선정전이다.

동행각 문을 나서면 희정당이 보인다. 왼쪽으로 간다.

선정문이다. 선정전까지 복도각으로 연결되어 있다.

선정전은 창덕궁 건물 중에서 유일하게 청기와를 하고 있다. 용마루와 잡상이 없다. 왕이 일상 업무를 하던 공식 집무실이다. 인정전 뒷산 때문에 인정전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순조 이후 공식 집무실을 희정당으로 옮긴 후 부터는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시는 혼전으로 사용하였다. 선정문과 선정전 사이의 복도각은 혼전을 위해 마련된 시설이었다.

조선왕실의 제사는 죽음과 관련된 흉례는 3년상이 끝나기 전까지는 혼전과 능에서 제사를 올렸다. 그 이후에는 왕실의 조상신을 모시는 길례의 예로써 종묘에서 제사를 올렸다.

선정문 남쪽에 빈청이 있다. 실제 건물 이름은 비궁청이다. 팔작 지붕의 모양과 맞배 지붕 모양이 결합되어 있다. 고위급 신하들이 왕을 만나기 전에 국사를 논하던 곳이다. 빈청의 역활이 순종 때에는 어차고로 바뀌었다. 현재는 관람객의 휴식을 위한 카페로 이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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